영상시

아담한 고독/박정만

zkvnclsh20 2010. 6. 6. 16:29


      아담한 고독


      산수국 한 가지로
      이 세상 산빛을 모두 받드는 저녁
      이 빠진 사기잔에 차를 따르며
      찻잔 속에 어리는 그대 뒷모습을 보노니

      아서라,

      슬픔은 오래 간직했다 약에 쓰고
      오늘밤은 그저 창밖의 별이나 세며
      일없이 눈끔적이 신세나 되자
      멍하니 눈뜬 장님 행세나 하자
      하마 지금쯤
      너와 내가 기대앉던 그 꽃자리에
      패랭이 꽃이라도 한 두엇 피어나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죄로 살겠지

      아따, 늬 몸땡이에서는
      무신놈의 땀냄새가 이리 난당가

      사투리로 스무살적 곤한 때를 이야기하며
      젊은 마음 꼬여대는 저녁 물소리

      이런 날은 강낭콩이나 까먹고 싶어
      사랑도 미움도 시름시름 까먹고 싶어
      그리하여 마지막 십원짜리 하나까지 다 까먹고 나서
      빈 껍데기로 남고 싶어
      빈 찻잔 속에 떠도는 향기로 남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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