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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화순 이양 쌍봉사 대웅전의 전경. 1984년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지어진 건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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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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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새벽,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달렸습니다. 새벽 4시가 넘어 덩그러니 버스 한 대가 주차해 있는 쌍봉사 앞에 이르렀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목탁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경내에서 작게 들려왔습니다. 밤새 내려온 피곤함을 달래고자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어둠이 사라지고 따뜻한 햇살이 차창을 통해 들어올 때 눈을 떴습니다. 쌍봉사 쪽을 바라보니 밤새 잠겨있던 산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쌍봉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 도윤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도로 알려진 국보 57호 철감선사 부도와, 목조 형식의 중층 건물인 대웅전이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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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문 앞에서 바라본 쌍봉사 경내의 대웅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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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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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는 임진왜란 때 폐사 됐다가 조선시대 현종(1667년)과 경종(1724년) 때에 이르러 다시 지어졌습니다. 쌍봉사는 경내가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사찰의 정문 역할은 해탈문이 하고 있습니다. 해탈문 사이로 바라보면 대웅전의 날렵한 모습이 보입니다. 보물 163호인 쌍봉사 대웅전은 지난 1984년 안타깝게도 화재로 전소됐고 지금 있는 것은 1986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1984년 소실됐을 때 그나마 다행으로 대웅전 현판과 법당 내 모셔졌던 목조석가삼존불은 구했던 모양입니다. 목조 삼존불은 석가모니와 그의 10대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섭존자의 미소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져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다소곳이 합장한 모습, 축 늘어진 귀 등 인상적인 부분이 많은 목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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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경내에 안치된 가섭존자의 따스한 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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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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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편에는 1m정도 되는 정연한 석축위로 극락전이 서 있습니다. 극락전 좌우로는 명부전과 나한전이 세워져 있고, 나한전 앞에는 정(丁)자형 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극락전에 올라가기 전 석축 좌우로는 단풍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좌우로 펼치며 서 있습니다.
희한하게도 바깥쪽으로 가지가 펼쳐져 있어서 극락전의 풍경을 더욱 빼어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상상해 봤습니다.
극락전과 지장전을 지나 길을 따라 오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로 알려진 철감선사 부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장전을 지나 낮은 오르막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대숲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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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뒷편에 앉아 있는 극락보전. 극락보전 앞의 두 그루 단풍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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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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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문화재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유심히 보다가도 내심 어려운 표정을 짓다가 그냥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기단이 어떻고, 탑신이 어떻고, 그리고 안상이니 가릉빈가니 사천왕이니 하다보면 석조물들은 대번 그냥 땅에 세워져 있는 돌덩이로 변하고 맙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명칭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저 이곳에서만큼은 수많은 세월을 견뎌내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리고 석공의 눈물겨운 정성을 느껴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감선사 부도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석공의 한없는 정성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진 석조물입니다. 사진을 찍고 있노라면 수십 장도 너끈히 나올 만큼 세세한 조각솜씨가 느껴집니다. 맨 아래 하대석이라고 불리는 부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빼곡히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팔각으로 만든 뒤 각 면에 사자 한 마리씩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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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57호로 지정된 철감선사 부도의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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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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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뜻 보면 사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각 면에 새겨진 사자의 모습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녀석은 자기 다리를 물고 있고, 또 어떤 녀석은 웅크려 있습니다. 마치 팔각의 돌에 사자상들만 따로 붙여놓은 듯한데 이는 사자를 돋을새김 했기 때문입니다.
가운데로 움푹 들어간 중대석에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가릉빈가가 새겨진 상대석에도 세세한 아름다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꽃은 하늘 쪽으로 올라가서 앙련이라 부르는데(땅 쪽으로 엎어져 있는 듯한 연꽃은 복련이라고 합니다) 연꽃잎 안에도 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릉빈가는 극락정토에 살고 있는 상상의 새로, 상반신은 사람이고 날개와 다리 쪽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철감선사 부도의 가릉빈가는 여러 악기를 불고 있습니다. 이중 나팔을 불고 있는 가릉빈가는 마치 술을 병째 들고 마시는 듯한 모습이어서 잠시 웃어봤습니다.
철감선사 부도의 아름다움의 극치는 바로 지붕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통건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기와와 기왓골 뿐 아니라 서까래와 처마, 암막새와 수막새까지도 자세하게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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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감선사 부도에 새겨진 사자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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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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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막새에는 8장의 연꽃잎을 새긴 연화무늬가 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무를 깎아 만들어도 저렇게 새겨지지 않을 듯싶은데 강하디 강한 돌에다가 새겨 넣은 것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주기까지 합니다.
기술과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선현들이 남긴 문화유산에는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경주 석굴암과 80여 미터에 이르는 황룡사 9층 목탑, 그리고 철감선사의 흔적인 이 부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요즘의 기술로 아니 사람의 힘으로 이런 아름다움을 새길 수 있을까요? 만들 수 있다 치더라도 천년이 넘은 세월을 견딘 건 또 어떤가요.
철감선사 부도와 함께 주변에는 철감선사 부도비가 있습니다. 철감선사의 공적이 새겨진 비신은 사라지고 없지만, 비신을 받치고 있는 거북모양의 귀부와 비신 위에 올려진 지붕돌인 이수만이 남아 있습니다.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듯한 생동감 있는 거북의 모습과 여의주를 물고 있는 당찬 얼굴, 그리고 용들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뛰노는 이수의 모습은 철감선사 부도에 더해주는 보너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 부도비는 보물 1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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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감선사 부도에 새겨진 가릉빈가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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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감선사의 부도와 비를 보고 내려오는 길. 머릿속에서 '돌을 새기는 석공의 마음은 어땠을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못해도 수년은 걸렸을 텐데···, 거기다 한 번 잘못 돌을 새기면 처음부터 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어쩌면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 지금의 석물이 완성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문화재를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바로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고, 그러면서 역사를 곱씹어 보는 것 아닐까요?
쉽게 찾지 못하는 머나먼 곳 전남 화순 이양 땅에서 겨우 몇 십분 보내고 떠나야 했기에 아쉬움이 짙었습니다. 극락전 앞 석축사이를 비집고 자란 작은 철쭉의 생명력에 시선을 뺏기고 있는 순간 젊은 스님 한 분이 서둘러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쌍봉사 경내에 이름 모를 새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습니다. 참으로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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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감선사 부도의 지붕돌은 전통건축양식을 정교하게 새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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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감선사 부도비. 비신은 사라지고 용의 머리를 가진 귀부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이수만이 남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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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보전 석축 틈사이로 피어난 철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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