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늙어 현직에서 물러나면
물 맑고 공기 좋은 곳
산과 들과 하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거다
산에 묻혀
오두막 옆에 텃밭을 일구고
산나물, 머루, 다래 따 먹으며
산사람으로 욕심 없이 살 거다
들에 묻혀
넓은 들녘, 들꽃과 들풀을 뜯고
맑은 강, 물고기 천렵하며
야인(野人)으로 유유자적, 그렇게 살 거다
하늘에 올라
둥둥 떠도는 구름과 친구하고
반짝이는 별님과 대화하며
허공을 노니는 바람으로 살 거다
하지만
산이 반겨줄지
들이 받아줄지
하늘이 쫓아내지나 않을지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이 태산이다
어쨌거나 나 늙으면
산이야, 들이야, 하늘이야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노래하는 산새
출렁이는 들녘
둥둥 떠다니는 하늘의 구름과
오래도록 말벗하며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거다
사랑도, 우정도, 미련도, 연민도
삶과 죽음의 번뇌와 갈등도
있는 듯 없는 듯 접어둔 채
산과 들과 하늘에 묻혀
맑고 고운 자연인으로 살아갈 거다.(0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