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엄마와 인사동에 다녀왔습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신 “전통 지갑 하나 사고 싶은데….”라는 말씀을 들었거든요. 몇 년 만에 찾은 인사동에서 엄마는 열두 살 소녀처럼 좋아하셨어요. 눈을 반짝이며 휴대 전화 고리나 수공예 장식품 등을 만지작거리고, 서른 살 넘은 딸보다 경쾌한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누비셨습니다. 예전부터 이런 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어디 같이 가자시면 더 이상 듣지도 않고 단박에 거절하고, 내 옷가지 등을 사러 갈 때도 다리 아프다며 투정했지요. 식당에서는 자기 식사 한술 뜨기도 전에 내 밥 위에 온갖 반찬을 얹어놓으시는 엄마가 짜증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이랑 보시지….' 저는 늘 그랬듯 살짝 귀찮아하며 회사 근처 영화관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습니다. 엄마는 대형 영화관이 아닌, 소극장처럼 작고 아늑한 그곳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셨지요. “이런 데도 있네. 작은딸이랑 다니니 새로운 곳도 와 보고 참 좋다.” 아,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에겐 하도 많이 다녀 아무렇지도 않은 장소가, 엄마에게는 설레는 장소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어려운 살림에도 엄마는 저와 언니에게 귀중한 체험을 선사하고자, 틈나는 대로 온갖 놀이공원과 과학관, 미술관 등을 찾아다니셨지요. 하지만 우리가 크면서 각자의 생활로 바빠지자 엄마는 자연스레 자신의 문화생활까지 포기하셨던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일본 요리를 잘 하는 곳에서 저녁을 대접했고요, 어느 날은 재즈 공연이 열리는 라이브 바에서 맥주 한잔 했습니다. 주말에는 재미난 연극을 찾아 대학로를 거닐었지요.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엄마가 바라신 건 특별한 '문화생활'이 아닌,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걸요. 친구처럼 손잡고 웃고 울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걸요. 엄마는 저와 함께 있으면 다른 때보다 더 환하게 웃고, 더 슬프게 우셨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더 잘하려고 합니다. 엄마의 말 하나하나를 귀담아 듣고, 엄마의 마음 구석구석을 헤아리려고요. 그렇게 엄마의 곁에서, 딸이 아닌 친구가 되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묻습니다. “엄마, 내일은 어디 갈까요?” 글 《좋은생각》 안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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