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를 믿고 두려워하라 2
옛날 중국 소주(蘇州) 땅에 돈많은 장자 시대창(施大昌)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찌기 불교 신도가 되어 신심이 남달리 돈독하더니
호구산(虎丘山)에 관음사(觀音寺)를 창건하였습니다.
절의 중앙에는 주법당인 관음전을 건축하여 화려하게 장엄하고
백의관음보살상을 모시고 현판을 금으로 도금하니 운치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시대창이 어려운 환경에도 이만한 절을 지어 놓으니 호구산마저 방광을
놓은 듯 산색이 빛을 더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백의 관음보살을 조성하여 모셔놓고 보니 백화도량(白花道場)을
꾸며 놓은 것 같아서 시대창의 마음은 더없이 흐뭇하였습니다.
며칠 후면 낙성식을 하게 되었으므로 도량 청소와 경내 정리를 다 마치고
목욕을 한 후 새 옷을 갈아입고 관음전에 들어가서 수없이 예배를 드리고
축원과 맹세를 하였습니다.
“중생을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구해주시고 고통을 건져주시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저는 보살님을 한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보살님을 스승으로 삼고 마음속에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저의 죄를 소멸하여 주시고 복을 이루어 주시는 동시에 무수한 중생을
이 백화도량으로 이끌어 제도하여 주소서.”
지극하게 축원을 하였습니다.
장차 주지로 모실 단계(丹溪) 화상도 시씨와 함께 관세음보살님께 예배하고
꿇어 앉아서 시씨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축원을 마치고 법당문을 나오려는데 절 뒤에서 사람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단계 스님과 시대창은 이상하게 여기고 찾아 올라가서 보니까 오랫동안
시대창과 헤어져 있던 어릴 적 친구인 계한경(桂漢卿)이 아닌가.
시대창은 깜짝 놀라서,
“이게 웬일인가, 자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와서 울고 있는가?”
“자네 보기에 면목이 없네. 내가 남의 빚돈이 많아서 갚을 길이 없어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음으로 사죄하려고 하였지만, 내가 죽으면 마누라가
불쌍해 죽을 수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신세타령을 하고 울며
앉아 있는 것일세.”
이 말을 들은 시대창은 말하되,
“잘된 일일세. 우리 절에 모신 관세음보살님이 도와주실 걸세.
대관절 빚이 얼마나 되기에 죽으려고 결심까지 하였단 말인가?”
“자그마치 3만 냥일세.”
“어쩌다가 그런 큰 빚을 졌단 말인가?”
“살림이 기울어져서 무슨 장사를 해 보려고 남에게 빚돈을 얻어서 시작한
장사가 번번히 실패만 당하고 보니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다네.”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나의 가슴이 아프네. 사람이 나고 돈이 났지
돈부터 나고 사람이 났겠는가? 나도 그간 산을 사서 절을 짓고 불사를 하느라고
돈의 여유가 없으나 3만 냥은 있으니 빚을 갚고 형편이 되는대로 갚게나.”
“정말 고맙네. 시군은 나의 은인일세. 자네의 은혜는 잊지 않겠네.”
하면서, ‘시군은 군자란 말이야. 저런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내가 저런 친구를 어찌 잊을 것인가.’하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아, 빚만 갚으면 살 것같은 생각이 들겠지만 당장에 먹고 살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결실이 다 된 몇 천 평이나 되는 과수원까지 주었습니다.
계씨는 너무 감격하여 관음전을 향하여 머리 숙여 절하면서 맹세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이게 다 보살님의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군이 불자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와 같이 너그럽게 친구를 살려 주었겠습니까.
제가 만일 금생에 이 돈을 갚아주지 못한다면 우리 식구가 죽어 저 세상의
개나 말이 되어서라도 갚겠나이다.”
계씨는 시씨가 준 돈으로 먼저 빚을 다 갚고 과수원을 경영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자녀가 3남매인데 큰 딸을 시대창의 아들인 시환(施還)에게
주어서 성혼을 시키겠다고 먼저 약속까지 하였습니다.
얼마뒤에 계한경은 시씨가 준 과수원에서 큰 횡재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대추나무 밑에서 토금(土金)으로 묻혀있던
벽돌장만한 순금덩어리를 주웠습니다. 그것을 몰래 팔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시대창은 어찌된 일인지 실패를 거듭하여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한경은 빚돈 3만 냥도 갚지 않고 약혼을 한 딸도 며느리로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타지방(회계 땅)으로 이사를 하여 떠나가버렸습니다.
계씨는 황금에 눈이 어두워 돈을 더 벌려고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에 가서
무역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협잡꾼에게 속아 재산을 송두리째 털려버리고 알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기가 막혀서 도로변에 쓰러져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어떤 큰 집에
이르러 밖에서 개구멍으로 들어갔는데 뜻밖에도 시대창이 있는지라 양심에 찔려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사과 인사를 하려는데 시대창이 그를 보고 꾸짖되,
“이 개가죽을 쓴 친구가 무엇을 또 얻어 먹으려고 왔느냐?”
하고 발길로 찹니다.
그는 도망하여 뒷마당으로 들어가 보니까 두 아들과 아내가 개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도 깜짝 놀라서 자기 몸을 돌아본즉 이미 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 땅을 후벼 파다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요?”
“여보, 당신이 호구산 관음사에 계신 관세음보살님께 맹세한 일을 잊었소?
당신이 마음을 잘못 썼기 때문에 그대로 된 거요. 누구를 원망하겠소.”
계씨가 꿈을 깨서 집으로 돌아가 본 즉 벌써 두 아들이 죽었고, 아내도 병이 들어
죽으려고 하는데 허공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되,
“아버지, 우리 집에서 시대창씨의 은혜를 저버렸다고 해서 명부시왕(冥府十王)이
우리들 모자 셋을 개가 되게 하였습니다.
숫강아지 두 마리는 우리 형제가 되고, 혹이 달린 암강아지는 어머니요,
아버지도 오래지 않아서 사자에게 붙들려 가서 시왕님의 판결을 받고 이 집으로
개가 되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누님만은 남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하는데 그 목소리가 꼭 큰 아들의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그 뒤에 화재를 당하여 집이 타버리니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이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딸을 데리고 소주(蘇州)로 가서 시대창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간에 시대창은 다시 살림이 일어나서 거부장자가 되어 대궐같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서씨의 아들 환(還)이도 벌써 대가집 딸과 성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계씨는 시씨를 보고,
“시형에게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지만 먼저 당신 아들인
환이에게 내 딸을 데리고 왔으니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더니, 환이가 아버지 대신 나서서 말하되,
“계씨, 말같지 않는 말씀은 하지도 마시요. 사람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도 분수가 있지 않습니까.
계씨가 3만 냥의 빚 때문에 죽게 된 것을 우리 아버지가 갚아주게 하고
더구나 과수원까지 주지 아니하였소.
계씨는 우리 과수원에서 금덩이를 얻어 가지고 말 한마디 없이 회계 땅으로
도망가서 장사를 한답시고 낙양, 장안으로 왕래하며 호화판으로 잘 살더니
급기야 망하니까 무슨 얼굴로 우리집을 찾아온 것이오?
우리집이 기우니까 아주 망할 줄 알고 당신은 횡재를 하여 아주 잘 살 줄로
알았지요? 하지만 사람은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도대체 이 마당에 무슨 염치로 다시 찾아왔단 말입니까.
당신께서 우리 관세음보살님께 맹세한 대로만 하였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거절합니다. 그러한즉 다른 하인들이 가세하여 욕설을 퍼붓고 쫓아냅니다.
계씨는 창피를 무릅쓰고 사지(四肢)를 땅에 뻗치고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며,
“내가 미련해서 저지른 일이니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요.”
하며 애원하고 있으니까, 그 집에 세 마리의 강아지가 쫓아 나와 슬프게
울고 짖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계씨는 이것이 자기의 처자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환이를 붙들고 애원하였습니다.
“오갈데 없는 내 딸을 그대의 후실이라도 받아들여 주면 죽어서
혼령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갚겠소.”
이때 옆에 있던 시대창이 말하기를,
“계씨의 소행은 괘씸하지만 그의 딸이야 무슨 죄가 있겠느냐.
네가 용서하고 받아들여서 둘째 아내로 삼아라.”
하고 권고하니 환이도 생각을 바꿔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계씨는 그 딸을 시씨에게 맡기고 호구산 관음사로 올라가서 모든 죄업을
관음보살님께 참회하는 기도를 지극하게 3년을 하였습니다.
백년 묵은 때도 하루 아침에 씻어서 깨끗하게 하듯 죄는 지극하게 참회하면
말끔히 씻을 수 있습니다.
계씨는 깨끗한 마음으로 출가까지 하여 스님이 되어 시씨의 행복을 빌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의 몸을 받은 처자가 인간으로 환생하기를 기도 발원 하였습니다.
그 뒤 어느 날 밤에 계씨가 꿈을 꾸었는데 아내가 나타나서 말하되,
“당신이 늦기는 하였지만 과거의 죄를 관음보살님께 참회하고 수도한
공덕으로 나와 당신의 두 아들도 업보를 소멸하고 고통을 여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치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날 계씨는 사실을 알아보려고 시씨집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았더니
개 세 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다고 하더랍니다.
계씨은 단계화상의 뒤를 이어 관음사의 주지가 되고 시씨는 화주로서
80세까지 같이 살면서 도반이 되어 염불삼매(念佛三昧)로써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은혜를 배반하고 덕을 잊다가
과보를 받은 좋은 예입니다.
이렇듯 분명한 것이 인과응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무여스님)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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