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위의 말은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 중 일부를 인용한 말이라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사실 단테의 신곡에는 위와 같은 구절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34행에서 36행에 이르는 부분, 김운찬 교수의 번역에 따르면 "치욕도 없고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사악한 영혼들이 저렇게 처참한 상태에 있노라"라는 구절이 이와 흡사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잘못 인용하거나 오역을 했을지언정 케네디의 저 말은 시대적으로 그리고 진정한 부분에서 유효하다.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의 투사가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건만 많은 이들이 자기의 이해와 가치의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게 된다. 이것의 책임은 사실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 판단이 유보되었을 경우 사회는 질곡으로 빠져든다. 욕망과 이해만 남은 사회. 그것은 동물의 세계와 다름이 아니다.
19세기 초 제국주의의 유령이 신자유주의의 옷을 입고 오늘도 하늘 낮게 드리운다. 아직 우리에겐 계몽의 시대가 남아있음이다.
전곡 이어듣기
1. 고래를 위하여
2.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3. 꽃 지는 저녁
4. 내가 사랑하는 사람
5. 또 기다리는 편지
6. 우리가 어느 별에서
7. 수선화에게
8. 이별 노래
9. 강변역에서
10. 북한강에서
11. 풍경 달다
12.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13. 눈물꽃
14. 맹인부부가수
15. 연어 (시낭송 트랙)
안치환이 작정하고 정호승을 노래한다. 이전에도 꽤 잘 어울렸던 이들인데 앨범 하나를 전부 정호승으로 채웠다.
이젠 더 이상, 추모시를 읽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 시대는 끝났다고, 더 이상 죽음은 없어야 한다고 떠들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끝난 줄 알았다, 그렇게 그때가 끝날 줄 알았다. 권력은 인간의 도구.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어떻게 쓰일 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망나니에게 칼자루를 쥐어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있었냐고 내 가슴이 나를 친다.
추모시가 필요 없다던 시대가 지나고, 다시 추모시를 읽어야 할 시대가 돌아왔다. 눈앞에 불타는 넋들이 황망한 얼굴로 서 있다. 이제 어쩌면 좋으냐? 친구야. 이제 우리, 어쩌면 좋으냐? (블로거 자그니)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을 데리고
추워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 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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