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서예

해학이 넘치는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

zkvnclsh20 2008. 9. 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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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통통한 몸집, 고운 얼굴의 여인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서 이 모습을 훔쳐보는 땡초들의 입장이

혜원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목욕하는 여인들을 보고 그리다 돌을 맞고 쫓겨난 적도 있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그림을 보면 난, 르누아르와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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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서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짝짓기에 열중하고 있는 개 두 마리이다.
개의 짝짓기라니, 그림의 제재로는 워낙 속된 것이기에,
이 그림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중략)...
인물을 보자.
한 성인 여성과 몸종으로 보이는 처녀가 소나무 앞에서 개의 짝짓기를 감상하고 있다.
그런데 여인은 소복을 입고 있다. 상중인 것이다.
기와를 얹은 담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인은 꽤 지체가 높거나 부유한 상류층의 여인이다.
시방 상중인 이 여인은 담장 안에 '갇혀' 있다.
...(중략)...
짝짓기를 하는 것은 개뿐만이 아니다. 개의 위쪽을 보면 참새 세 마리가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마리는 땅에 내려앉아 짝짓기를 하고 있고,
그 위의 한 마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날개를 파닥이고 있다.
짝짓기에서 배재된 이 놈은 과부와 같은 신세다. 담장 밖 나무에 분홍색 꽃이 피었으니,
바야흐로 봄이 한창이다.
화창한 봄날 과부는 계집종과 우연히 개구멍을 통해 들어온 개 두마리가 짝짓기 하는 것을 본다.
게다가 참새까지 짝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 여인은 상중이되, 남편의 상중이다.
부모의 상중이라면 이런 그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봄날의 과부라? 생각나는 것이 없는가?
나는 이 그림이 혜원의 그림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혜원은 과부의 성(性)을 끄집어 내고 있는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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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지는 깊은 밤 한껏 차려 입은 남녀가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한다. 무슨 일일까?
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수줍음 반 교태 반 야릇한 정이 볼에 물들었다.
저고리 깃과 끝동의 보랏빛이 옥색 치마 아래 진자줏빛 신발과 어울리고,
치마와 동색인 한층 연한 쓰개치마 맵시가 곱기도 하다.
그윽한 눈길을 건네는 사내는 오른손에 초롱 들고 왼손으로 허리춤을 뒤적인다.
애틋한 정표라도 전하자는 것일까? 도포 자락이 가볍게 흔들리고

긴 갓끈은 멋들어지게 어깨에 걸쳤는데
마음은 진작부터 초롱불 속처럼 뜨듯해서 발끝이 벌써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내로라 하는 장안의 한량인 사내의 가죽신은 코와 뒤축에 따로 옥색을 댄 호사스런 것이다.
여인은 치마를 묶어 올려 하얀 속곳이 오이씨 같은 버선 위로 드러났다.

아마도 함께 갈 낌새지만 안 그럴지도 행여 알 수 없다.
달빛이 몽롱해지면서 두 사람의 연정도 어스름하게 녹아든다.
배경이 뽀얗게 눅여져 있으니 섬세한 필선과 화사한 채색으로 그려진

두 연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신윤복은 이 정황을 풍류 넘치는 흐드러진 필치로 이렇게 적었다.

‘달도 기운 야삼경/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화제(畵題)도 기막히지만 글씨 주위와 옆 건물 벽을 반쯤 여백으로 처리한 솜씨가 쏠쏠하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옛말에 ‘늙어 기첩(妓妾)을 두면 반드시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정승을 지낸 김명원이 젊어서 화류계에서 놀기를 좋아했는데,

그만 사랑하는 기생이 권문세가의 첩이 되고 말았다.
그녀를 잊지 못한 명원이 어느 날 밤 담을 넘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크게 경을 치게 되었다.
때마침 형 경원이 급히 달려와 소리를 쳤다.
“내 아우가 기운이 호탕하고 몸가짐은 거칠어 공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우는 평소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 뒷날 크게 쓰일 인물입니다.

공께서는 아녀자 일로 나라의 인재를 정녕 죽이시렵니까?”
그러자 주인은 결박을 풀고 후히 술을 대접해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는데 김명원을 끌어댄 것은,

화제로 쓴 시구가 들어 있는 한시를 그가 지었기 때문이다.

‘창 밖은 야삼경 보슬비 내리는데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리라
나눈 정 미흡해서 날 먼저 새려 하니
나삼(羅衫) 자락 부여잡고 뒷기약만 묻네’
(窓外三更細雨時 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 更把羅衫問後期)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의 일은 갈피도 많고 두서는 없으며 반드시 은밀하게 마련이다.
신윤복은 그러한 남녀간의 정을 주제로 한 그림의 명수였다.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소설 한 편보다 더 소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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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오른쪽에는 장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있고,

왼쪽에는 어떤 사내가 역시 여인과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다.
흔히 이 장면을 두고 조선 최초의 키스신이라며 흥분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남성과 여성의 입술이 이렇게 근접해 있는 그림은 조선시대 최초의 것일 게다.
...(중략)...

이 그림의 시간은 왼쪽 위편에 달이 떠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밤중이다.

길 양쪽의 담장은 모두 기와를 얹었고, 오른쪽 담장 안은 거창한 기와집이다.
이 한밤중에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포교밖에 없으니,

이 그림은 포교가 밤에 서울의 고급 주택가를 순라 도는 장면인 것이다.
그런데 그림에 여자가 둘 등장하는 것이 몹시 흥미롭다."

책에서 이 다음 부분은, 두 여인의 복식으로 신분을 추측하는 내용이다.

담장 너머에서 두 남녀를 엿보고 있는 젊은 여인의 신분은, 옷차림으로 미루어 보아 기녀이다.
포교가 안고 있는 여인은, 남편은 물론 자식까지 있는 민간의 부녀자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이 세 사람이 어떤 관계이며, 이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 이야기를 지어 내어 상상하는 것은 보는 사람 마음이기에,

 나도 내가 생각해 낸 스토리를 올리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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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는 탕건을 쓰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오입쟁이가 있고,

기생의 몸종인 듯한 노랑저고리의 여자가 오입쟁이 앞쪽으로 엎드려 있다.
이제 막 집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전모 아래 가리마를 쓴 걸로 보아 두말할 나위 없이

기생임이 분명하다.
기생은 외출했다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고,

그 사이 오입쟁이와 몸종이 방안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묘한 것은 왼쪽의 나무들이다. 위쪽에 잎이 큰 활엽수가 있고,

아래에도 역시 녹음이 무성한 나무가 있다.
그 위쪽으로 발이 쳐 있으니, 계절은 한여름이다.

날이 더우니 기생이 전모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한여름에 왜 사내의 몸 위에 이불이 덮혀 있는가?

한여름에 누비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방안의 두 남녀는 이상한 짓을 하다가 갑자기 주인 기생이 찾아오자

누비이불을 덮은 것으로 여겨진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