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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 - 선면산수도

zkvnclsh20 2008. 9.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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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 - 1892
조선 시대의 서화가. 호 소치. 전라남도 진도 출생. 벼슬은 지중추 부사에 이르렀으며, 글,그림,글씨를 모두 잘하여 삼절이라 불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글씨에 있어서는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흔히 추사체를 썼다. 작품으로는 "하경 산수도", "만산 묘옥도", "산교 청망도" 등이 있다.

 

○ 소치 허유(許維/1809~1892)

서화 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小痴) 허련(許鍊)이다.

그는 나중에 당나라 남종화와 수문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딴 허유(許維)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허련은 순조 9년(1809)에 진도읍 쌍정리에서 났다. 어려서부터 그림 솜씨가 좋았는데 28살 때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초의선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녹우당에 보관 중인 공재 윤두서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 윤두서의 화풍

을 익혔다. 32살 때 초의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았다. 그는 조선 말기 선비화가 가운데 조희중, 전기중과 함께 김정희파로 불린다. 김정희는 허련과 그의 그림을 사랑해서 원나라 4대 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고 하는데 빗대어서 소치(小痴)라는 호도 주었으며 '화법이 우리 나라 사람의 고루한 버릇을 모두 떨어버려 서 압록강 동쪽에서 소치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까지 칭찬하였다. 서울에서 지

내면서 이름이 난 허련은 38세 때 헌종에게 그림을 바친 이래 궁중을 드나들며 그림을 그리거나 왕실에 소장된 고서화를 평하기도 했다. 그는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그리고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연, 신관호 등과 사귀면서 시와 그림, 글을 나누었다. 김정희가 죽자 허련은 서울에서 내려와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하며 말년을

보내다가 고종 29년(1892)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글, 그림, 글씨를 모두 잘 하여 삼절(三絶)로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묵죽(墨竹)을 잘 그렸다. 글씨는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화제(畵題)에 흔히 추사체(秋史體)를 썼다

작품으로는 서울대 박물관에 소장 중인 '선면 산수도'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허유
종이에 담채 20cm x 61cm 서울대 박물관 1866(고종 3)

 

〈선면산수도〉는 허유가 만 57세 때인 1866년 여름에 그린 것으로, 만년에 살던 진도의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소재로 한 것이다.
부채의 중앙부에 두어 채의 집과 몇 그루의 나무를 그리고 그 위에 산줄기를 배치하였다.
그의 산수화는 구도에 있어서 전형적인 남종화풍을 보이며, 황공망이 구사하던 피마준이나 건필을 잘 사용하였다.
색조는 담홍색과 청색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독특한 화격을 풍긴다.
여기에서도 필치가 매우 거칠고 활달하여 그의 화풍과 문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림의 위쪽은 그가 쓴 추사체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부채의 형태를 염두에 두고 부챗살이 퍼지듯 펼쳐진 구도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