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유교 경전인 禮記등으로 日月神 숭배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다음은 유교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祭法입니다. 이 문구에 달에 제사하는 문장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한국에서는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와 달, 별, 장마와 가뭄, 사방에 제사지내는 부분입니다.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 필자 주 1).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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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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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주 2).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4).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2. 유교 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月令부분의 天子 제사[음력 正月의 元日에 제사]. 天子제도 확립 및 수용이후 생긴 제의므로 법도대로 따라야 함.
天子乃以元日 祈穀于上帝 乃擇元辰 天子親載耒耜 措之于參保介之御間
3. 한국의 천자나 왕이 거명되지 않고 殷曆 正月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던 부여의 영고(역사책에서 언급되는 부여의 제천의식인 영고에 대한 설명임).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條)기록.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 斷刑獄解囚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