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野百蟲悲(대야백충비) 別友秋江畔(별우추강반) 牛山落日時(우산낙일시) 먼 하늘엔 한 기러기의 원망이고 큰 들에는 온갖 벌레의 슬픔이네 작별하는 친구는 가을 강의 언덕 우산에 해가 지는 시간일세. 서산대사로 더 유명한 청허당(淸虛堂,1520~1604) 휴정스님의 ‘가을 강에서 친구와 이별(秋江別友)’이라는 시이다. 가을날 석양볕에 친구를 보내며 지은 시이다. 청허당의 시는 간결하여 그의 당호가 의미하듯 맑고 투명하다 할 것이다. <그의 문집인 <청허집>에 전하는 시가 600여수가 되는데 율시보다는 절구가 거의 갑절이나 많고 절구 중에서도 7언절구보다는 5언절구가 월등히 많다. 어쩌면 사진작가가 순간적으로 피사체를 포착하는 찰나적 영감의 작동으로 시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위의 시도 작별하는 친구의 순간적 상황을 피사체로 정지시켜 놓은 듯하다. 친구의 이별임에도 불구하고 이별이란 말이 없다. 떠나는 친구와 전송하는 작자가 마주하고 있는 주변 상황을 자신은 촬영기사이고 친구의 주변은 피사체가 되어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 시를 감상하는 이는 빛바랜 사진을 꺼내 놓고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하나의 인물에서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사진의 구도를 살피면 먼 하늘과 넓은 들의 상하 공간, 가을로 상징되는 기러기와 벌레소리의 맞물림에 인간의 감정을 넣어 원망(怨)과 슬픔(悲)으로 사진의 숨은 뜻을 밝혔다. 여기에 주목하여야 할 우리 옛 시의 수사법 있으니 숫자의 대칭구도이다. 이 시에서도 하나(一)와 백(百)의 극과 극의 대칭이다. 일안(一雁)의 하늘 끝에 가물가물 울어예는 하나의 기러기 온 들을 출렁이게 하는 온갖 벌레(百蟲)의 울음에서 많고 적음의 대칭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과 백은 숫자의 최다 최소의 맞물림이다. 시선의 한계가 없는 하늘에는 극소의 하나와 넓어도 한계가 있는 들에는 최다의 백을 대칭시켜 공간의 압축감을 더하고 있다. 이런 구도에다 떠나는 친구를 강가에 세워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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