滔滔歲月深 도도세월심 老兒如父面 노아여부면 潭底忽驚心 담저홀경심 한번 어머니 곁을 떠난 뒤로 도도히 세월만 깊어졌네 늙은 아이 아버지 얼굴 닮아 우물 밑에서 갑짜기 놀란 마음 서산대사 청허당의 ‘그림자를 보고(顧影有感)’란 시이다. 스님이 출가하고 오랜 세월 뒤에 고향을 찾았다가 옛 우물을 보고 놀라 지은 시이다. ‘훤당’이란 집안에서 여인들이 거처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여인들이 집안의 뒤뜰에 원추리를 심어 어머니의 장수를 빈 데서 유래한 용어이다. 이런 어머니를 여의고 스님이 된 지도 오래 되었다. 단순한 오래다는 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간 자죽도 모를 만하다. ‘도도’란 물이 끊임없이 흐름을 이르는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고 오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출가 승려가 된 몸의 세월은 지나간 것뿐이지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옛 자취가 그리워 찾아간 고향집인 것 같다. 목이 말라 물을 길으려고 우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까맣게 잊었던 아버지의 얼굴이 우물 밑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임이 분명하지만 아버지의 얼굴 그대로인 것이다. 내가 출가할 당시의 아버지의 연륜이 오늘 내가 고향집을 찾은 연륜과 맞먹는 시기이다. 그러기에 내 얼굴은 내가 출가할 당시의 아버지의 얼굴인 것이다. 아무리 세속의 인연을 끊고 탈속한 몸이지만 어버이의 혈연적 이끌림은 모든 인연을 초월하는 인연의 근원이다. 우물을 들여다보는 순간적 마주침의 얼굴에 부자의 이 인연 이전의 인연이 불연듯 겹쳐진 것이다. 출가 승려의 마음속에 잔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혈연적 천리(天理)를 솔직하게 보여준 인간미 넘치는 시이다. 승려도 천륜적 테두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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